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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분석/최신동향

강제추행, 나라마다 기준이 이렇게 다르다

사례분석/최신동향2026년 5월 7일

강제추행, 나라마다 기준이 이렇게 다르다

[부산 변호사 한병철의 글로벌 법률 가이드3] 강제추행, 나라마다 기준이 이렇게 다르다

한국 대법원이 40년 만에 뒤집은 판결 - 주요국 강제추행법 대비교

한국에 살면서 가장 자주 듣는 성범죄가 '강제추행'이다. 지하철에서 엉덩이를 만지거나, 회식 자리에서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택시 안에서 갑자기 입맞춤하거나. 내 나라에서는 "그냥 불쾌한 일"로 끝날 수 있는 일이 한국에서는 징역 10년까지 갈 수 있는 중범죄다. 2023년 9월에는 한국 대법원이 40년 묵은 판례를 통째로 바꿔버렸다. 오늘은 이 얘기부터, 그리고 세계 주요국의 강제추행법을 둘러보자.

◆ 한국 - 40년 판례가 2023년 9월 21일 완전히 뒤집혔다

한국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죄는 이렇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

1983년부터 대법원은 이 "폭행 또는 협박"을 "피해자의 저항이 곤란할 정도"로 좁게 해석해왔다. 쉽게 말해 "어느 정도 세게 때리거나 위협해야 강제추행"이라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실제 재판에서는 이미 10년도 전부터 일반 폭행·협박 수준으로도 유죄가 나고 있었다. 법과 현실이 따로 놀았다.

그리고 2023년 9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2018도13877)가 이 40년 묵은 판례를 완전히 폐기했다.

사건 내용도 상징적이다. 사촌오빠가 피해자를 양팔로 끌어안아 침대에 쓰러뜨리고 올라탔다. 피해자는 극심한 공포로 저항조차 못 했다. 1·2심은 "저항이 곤란할 정도의 폭행은 아니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이 그걸 뒤집었다.

바뀐 기준은 이렇다.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까지 강력할 필요가 없다. 일반적인 폭행·협박 수준이면 충분하다."

이제 한국에서는 보통 수준의 폭행이나 협박만 있어도 강제추행으로 처벌된다. 처벌 범위가 크게 넓어졌다.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포인트 하나 짚고 가자. 한국에는 '기습추행' 법리라는 게 또 있다. 피해자가 미처 반응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입맞춤하거나 엉덩이를 만지는 경우다. 이때는 따로 폭행·협박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그 추행 행위 자체를 폭행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폭행·협박 요건이 아예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이미 폭행"이라는 뜻이다. 결과는 분명하다. 동의 없는 갑작스러운 성적 접촉은 한국에서 처벌된다.

◆ 미국 - 'Sexual Battery'라는 이름, 주마다 완전히 다르다

미국에서 한국의 강제추행에 해당하는 범죄는 주마다 이름부터 다르다. 가장 흔한 명칭은 "sexual battery(성적 폭행)"이고, 그 외에 "sexual contact", "sexual assault", "sexual imposition"도 쓴다. 50개 주가 다 자기식대로다.

캘리포니아는 sexual battery를 이렇게 규정한다. "타인의 의사에 반해, 성적 흥분·자극 또는 학대 목적으로 상대방의 친밀한 신체 부위를 만진 자." 기본은 경죄로 최대 6개월 징역 및 2000달러 벌금. 피해자가 구속·의식불명 상태이거나 병원 치료 중이거나 가해자가 지위를 이용한 경우는 중죄로 2년에서 4년 징역까지 간다.

연방법 'Abusive sexual contact'는 "타인의 의사에 반해 의도적으로 성적 접촉을 한 자"를 최대 2년 징역으로 처벌한다. 피해자가 16세 미만이거나 항거불능 상태였다면 최대 10년까지.

FBI는 2013년 강간 정의를 고칠 때 'Fondling(성적 만짐)' 정의도 함께 바꿨다. "동의 없이 상대방의 성적 부위를 만지는 행위, 성적 욕구를 충족할 목적으로 한 행위" - 한국의 강제추행과 거의 똑같은 정의다.

미국 강제추행법의 가장 특이한 풍경은 대학 캠퍼스의 Title IX 체계다. 연방 교육법 Title IX에 따라 연방 자금을 받는 모든 학교는 성폭력 사건을 자체 조사·징계할 의무가 있다. 캘리포니아의 '적극적 동의' 법과 결합해서 대학 안에서는 "동의 없는 모든 형태의 성적 접촉"이 징계 사유가 된다. 캠퍼스 기준이 일반 형사법보다 훨씬 엄격한 셈이다.

미국의 특징은 공소시효다. 주마다 천지차이인데, 캘리포니아는 2017년에 강간·성폭력 공소시효를 아예 전면 폐지했다. 몇십 년 전 사건이라도 기소할 수 있다. 뉴욕주는 2022년 'Adult Survivors Act'로 과거 공소시효가 지난 민사 청구를 되살릴 수 있는 1년짜리 '회복 창구'를 열었다. 이 창구로 와인스타인·엡스타인 관련 사건을 포함해 수천 건의 민사 소송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하철 성추행도 주·도시별 조례로 규율한다. 뉴욕시는 지하철 내 성추행을 "forcible touching"으로 기소한다. 뉴욕 MTA는 2022년부터 익명 신고 앱도 운영 중이다.

◆ 일본 - 2023년 '불동의와이세쓰죄'와 지하철 '치한'

일본 형법은 과거 '강제와이세쓰죄'였는데, 2023년 6월 개정으로 '불동의와이세쓰죄(不同意わいせつ罪)'로 바뀌었다. 폭행·협박 요건이 빠지고 동의 여부가 중심이 됐다. 형량은 6월 이상 10년 이하.

일본만의 독특한 풍경 하나. '치한(痴漢)' 문화다. 지하철·버스에서 벌어지는 신체 접촉은 형법상 강제추행과 별개로 각 도도부현 '미혹방지조례'로도 처벌한다. 도쿄도 조례는 6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 엔 이하 벌금(상습·재범은 가중). 혼잡한 전철 특성상 증거 확보가 어려워서 '치한 원죄(억울하게 몰림)' 논란이 워낙 많아 '치한 보험'에 가입하는 일본 남성들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문화 자체가 독특하다.

◆ 독일 - 2022년 말 '콘돔 몰래 빼기'도 성폭력으로 인정

독일 형법은 2016년 개정으로 "Nein heißt Nein(No means No)" 원칙을 도입했다. 현행법은 "타인의 식별 가능한 의사에 반하여 성행위를 한 자"를 6월 이상 5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 삽입이 있으면 '강간', 없으면 '성적 공격'으로 구분된다.

2022년 12월 13일 독일 연방대법원은 '스텔싱' - 성관계 중 상대방 몰래 콘돔을 제거하는 행위를 성적 공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콘돔 쓴 성관계와 안 쓴 성관계는 질적으로 다른 행위이므로, 하나에 동의했다고 다른 하나에 동의한 건 아니다"라는 것이다.

◆ 영국 - 'sexual touching' 한 마디로 끝

영국은 2003년 Sexual Offences Act 로 세계에서 가장 간결하게 정리했다. "고의로, 성적으로, 동의 없이, 상대방의 합의가 있을 거라는 합리적 믿음 없이 타인을 성적으로 만진 자"를 최대 10년 징역에 처한다.

'만지는 행위'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 직접 접촉, 옷 위로 만지기, 물건으로 만지기 다 포함된다. 한국의 기습추행 법리와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영국은 처음부터 "동의 없는 성적 접촉"을 바로 범죄로 규정해서 재판이 훨씬 간단해진다.

◆ 중국 - '여성에 대한 모욕'을 별도 범주로 둔다

중국 형법은 두 갈래로 나뉜다. "폭력·협박·기타 수단으로 타인을 강제로 추행하거나 여성을 모욕한 자"를 처벌한다. 기본 5년 이하, 공공장소·집단범이면 5년 이상.

'강제추행(强制猥亵)'은 성별 중립이지만, '여성 모욕(侮辱妇女)'은 여성 전용 조항이다. 남성이 여성에게만 저지를 수 있는 별도 범주다. 아동 추행(儿童猥亵)은 별도 가중처벌하고, 2023년 5월 최고인민법원·최고인민검찰원 공동 사법해석으로 처벌 기준이 더 강화됐다.

◆ 베트남 - 독립 조문은 없지만, 여러 조문으로 처벌된다

베트남 형법에는 한국처럼 성인에 대한 '강제추행'만 따로 규정한 독립 조문이 없다. 대신 사안에 따라 여러 조문으로 처벌된다.

16세 미만 아동에 대한 추행은 '16세 미만자에 대한 음란행위'로 6개월에서 3년, 가중시 7년에서 12년까지. 성인에 대한 경우는 강간 미수, 폭행·상해 관련 조문, 공공질서 관련 조문 등으로 처리된다.

◆ 러시아 - '성적 성격의 폭력 행위'가 담당

러시아 형법은 '성적 성격의 폭력 행위'가 강제추행과 유사 영역을 담당한다. "폭력·협박 또는 무력한 상태를 이용한 남색·레즈비언 또는 기타 성적 성격의 행위"를 3년에서 6년 징역으로 처벌한다.

러시아법의 특이점은 일부 조항에서 동성 간 행위에 대한 가중 사유가 별도로 규정돼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특유의 입법 구조라서 다른 나라 법과 단순 비교는 어렵다.

◆ 필리핀 - 'Acts of Lasciviousness'라는 예스러운 이름

필리핀 형법은 '음란행위(Acts of Lasciviousness)'가 강제추행에 해당한다. 강간죄의 요건(폭행·협박, 무의식, 기망, 16세 미만) 중 하나를 충족하는 상황에서 음란한 행위를 한 자를 6개월 1일부터 6년까지 처벌한다. 이름은 예스럽지만 실질은 한국의 강제추행과 비슷하다. 2022년 16세 미만 아동에 대한 음란행위는 가중처벌된다.

◆ 인도네시아 - 2022년 TPKS법으로 '비물리적 성폭력'도 범죄화

인도네시아 2022년 TPKS법은 성폭력을 9개 유형으로 세분화했다. 이 중 '물리적 성폭력'과 '비물리적 성폭력'이 강제추행 영역에 해당한다. 비물리적 성폭력에는 성적 언행·협박·치부 노출 같은 것이 포함된다. 디지털 성폭력도 별도로 규정돼 있다.

◆ 스리랑카 - '중대한 성적 학대'로 아주 넓게 포괄

스리랑카 형법은 '중대한 성적 학대(Grave Sexual Abuse)'가 강제추행에 해당한다. 강간에 해당하지 않는, 성적 만족을 위한 비동의 행위를 5년에서 20년 징역에 강제노동형까지 더해 처벌한다.

스리랑카가 흥미로운 이유는 강간죄 정의가 너무 좁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질 삽입만 강간. 그 외 모든 형태(구강 강제, 항문 강제, 남성 피해자 등)가 전부 이 '중대한 성적 학대'로 몰린다. 그래서 범위가 엄청 넓다.

◆ 한국에서 강제추행을 당했다면 - 지금 한국은 당신 편이다

2023년 9월 판례 변경으로 한국은 강제추행 피해자(외국인 포함)에게 이전보다 훨씬 유리한 나라가 됐다. "저항하지 않았으니 강제추행이 아니다"라는 변명은 이제 잘 안 통한다. 한국 법원은 다음 중 하나만 있으면 강제추행을 인정한다.

① 보통 수준의 폭행

②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협박

③ 또는 기습적 추행(갑작스러운 성적 접촉 그 자체를 폭행으로 평가)

여기에 '성인지 감수성' 법리로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중요한 증거로 다뤄진다. 짧은 접촉이라 CCTV에 명확히 안 찍혔어도, 가해자의 인상착의와 상황을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으면 유죄 입증이 가능하다.

◆ 지금 바로 해야 할 것

1. 112 또는 1366. 외국인은 다누리콜센터 1577-1366(13개 언어 통역).

2. 해바라기센터(24시간, 무료, 전국 39개소)로 간다.

3. 가해자의 인상착의, 시간, 장소, 주변 CCTV 위치를 메모한다.

4. 목격자가 있으면 연락처를 꼭 확보한다.

5. 가해자와의 카톡·문자·통화 기록을 전부 백업한다.

6. 지하철·버스 내 성추행이면 지하철 보안관에게 즉시 신고하거나 역무실로 간다. 부산지하철은 1577-7081에서 신고 가능.

좋은 변호사는 강제추행의 기준을 정확히 이해하고, 어떤 증거를 어떻게 모아 어떤 조항(강제추행? 준강제추행?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으로 기소 방향을 잡을지 설계한다. 외국인 피해자의 경우 통역·보호조치·비자 연계 대응까지 함께 봐준다.

◆ 마지막 한마디

한국은 강제추행 성립 요건이 실질적으로 낮아졌다. 이건 외국인 피해자에게 유리한 변화다. "내 나라에선 별일 아니라고 했는데" 같은 말은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당한 일은 한국 법으로 처벌된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덜 보호받는 일은 절대 없다.

한병철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 변호사(대한변협 인증 형사전문변호사 · 부동산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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