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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변호사 한변의 리얼상담실31] AI 판사, 정말 사람보다 공정한가
[부산 변호사 한변의 리얼상담실31] AI 판사, 정말 사람보다 공정한가
판사 불신이 부른 AI 판사 논쟁, 무엇을 봐야 하는지 짚는다
판결 기사에는 늘 같은 댓글이 달린다. "차라리 AI한테 재판받고 싶다."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공감 수가 가장 많은 댓글은 대개 이 자리를 차지한다. 2025년 4월 주간조선이 전국 성인 1,050명에게 물었더니, "법원에 AI 판사가 도입된다면 인간 판사와 AI 중 누구를 더 신뢰하겠나"라는 질문에 64%가 AI를 골랐다. 2020년 한 조사에서 그 차이가 48% 대 39%로 크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몇 년 사이 기류가 확연히 바뀌었다.
이 숫자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같은 조사에서 법원 판결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절반을 넘기지 못했고, "형벌이 판사마다 다르다"는 응답은 88%, "피의자의 정치·경제적 지위가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은 86%에 달했다. 사람들은 묻고 있다. 친분도 청탁도 통하지 않고, 점심을 먹었는지에 따라 형량이 흔들리지도 않는 기계가, 차라리 더 공정하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여론은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 더 최근 조사로 눈을 돌리면 결이 달라진다. 미국 주법원을 대상으로 2025년 11월 실시된 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오히려 'AI가 법원에 도움보다 해를 끼칠 수 있다'며 실수와 신뢰 훼손을 걱정했고, 'AI가 법원을 더 효율적으로 만든다'고 본 사람은 31%에 그쳤다. 법원은 못 믿겠다면서도, 막상 그 판단을 기계에 넘기는 데에는 머뭇거리는 셈이다.
상담실에도 비슷한 질문이 들어온다. 판사를 못 믿겠으니 차라리 AI가 재판하면 안 되겠느냐는 물음이다.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AI는 공정하다'는 믿음 안에 숨은 함정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기계는 편견이 없다"는 가장 흔한 착각
사람들은 AI가 중립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AI는 무(無)에서 판단하지 않는다. AI는 과거의 데이터를 먹고 자란다. 그 데이터가 과거의 차별을 담고 있으면, AI는 그 차별을 '정답'으로 학습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미국의 콤파스(COMPAS)다. 피고인의 재범 위험을 점수로 매겨 보석과 양형 판단을 돕던 알고리즘이다. 2016년 비영리 언론 프로퍼블리카가 플로리다주 브로워드 카운티 피고인 1만여 명의 콤파스 점수를 분석한 결과, 흑인 피고인은 실제로 재범하지 않았는데도 백인 피고인보다 '고위험군'으로 잘못 분류될 가능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개발사 측은 이 분석에 반박했지만, 짚어주는 지점은 분명하다. 기계가 인종을 직접 본 것은 아니다. 과거의 체포 기록과 범죄 데이터를 학습하는 동안, 그 안에 녹아 있던 역사적 차별까지 함께 배운 것이다.
핵심은 AI가 공정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AI가 무엇을 학습했고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지느냐다. 한 정보대학원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AI는 철인이 아니라 때로는 과거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거울이 보여주는 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울을 깨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진짜 AI에게 재판을 맡겨봤더니
그렇다면 실제로 AI에게 사건을 판단하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미국 시카고대 로스쿨의 에릭 포즈너 교수 연구팀이, 앞서 연방판사 31명을 대상으로 했던 그 실험을 이번에는 생성형 AI로 재현해봤다.
원래 실험은 경력 평균 17년의 그 판사들이 가상의 전쟁범죄 항소심을 판단한 것이었다. 사건의 뼈대는 같게 두되, 피고인을 동정이 가도록 묘사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그리고 하급심이 판례를 따른 경우와 어긋난 경우로 조건을 나눴다.
결과는 의외였다. AI는 피고인의 딱한 사정에는 거의 흔들리지 않고, 판례의 유무에 훨씬 강하게 좌우됐다. 반면 인간 판사들은 피고인에게 동정할 사정이 있으면, 그것이 법적으로는 사건과 무관한데도 판례에서 벗어나는 판단을 자주 내렸다. 흥미롭게도 AI의 판단 방식은 노련한 판사보다 오히려 법대 학생들과 비슷했다. 연구팀이 "피고인의 사정을 고려하라"고 아무리 지시를 바꿔도, AI를 인간 판사처럼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
여기서 우리가 던지던 질문이 뒤집힌다. AI는 '더 공정한' 것이 아니라 '다르게 판단하는' 것이다. AI는 법을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적용하지만, 바로 그 정확함 때문에 사람의 사정을 보지 못한다. 연구팀의 해석이 인상적이다. 규칙을 따랐을 때 부당한 결과가 나오면 그 규칙에서 벗어날 줄 아는 능력, 즉 인간 판사의 약점처럼 보이는 그것이야말로 실은 인간 판사의 강점이라는 것이다.
AI가 틀리면, 누가 책임지는가
AI 판사를 둘러싼 가장 무거운 질문은 따로 있다. AI가 틀린 판단을 내렸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판사의 판단은 불완전해도, 우리는 그에게 이유를 물을 수 있다. 판결문이 남고, 판사는 자기 이름으로 그 판단에 책임진다. 그 판단은 항소와 비판, 나아가 역사의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AI의 판단에는 '블랙박스'라 불리는 문제가 있다. 놀라운 성능 뒤에서, 정작 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를 사람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생성형 AI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럴듯한 문장으로 결론을 포장한다. 불투명한 판단이 마치 깊은 숙고의 산물처럼 보이게 된다.
조작의 위험도 분명히 있다. 알고리즘도 결국 사람이 만든다. 누군가 결론을 미리 정해두고 그에 맞는 판결문을 써내도록 AI에 지시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학습 데이터에 손을 대거나, 특정 결론으로 기울도록 모델을 길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대형 로펌이 오랜 기간 쌓은 방대한 서면으로 맞춤형 AI를 만들고, 그것을 갖추지 못한 개인과 맞붙는다면, AI는 공정의 도구가 아니라 불균형의 도구가 된다.
판사의 비위나 구속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기계라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분노가 터진다. 일리가 있다. AI는 뇌물에 흔들리지 않고, 친분에 휘둘리지 않으며, 같은 사건에 같은 기준을 빠르게 적용한다. 자의적 판단이나 단순한 오판을 줄여줄 여지도 분명히 있다. 다만 기억할 것이 있다. 부패한 판사는 적발되면 처벌되고 판결은 바로잡힌다. 그러나 잘못 학습된 AI가 수만 명을 똑같이 잘못 판단하면, 그 피해는 조용히, 그리고 대량으로 쌓인다. 사람의 부패는 눈에 띄지만, 알고리즘의 편향은 숨는다.
세계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나
AI 판사를 둘러싼 고민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다만 나라마다 답이 다르다.
미국은 변호사 없이 소송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 연구가 2005년부터 2026년까지 연방 민사사건 450만 건을 분석했더니, 20년 가까이 11% 안팎이던 본인소송(수감자 제외) 비율이 2025회계연도에 16.8%로 뛰었다. 연구진은 이 증가의 상당 부분을 누구나 쓸 수 있는 AI 챗봇 확산과 연결짓는다. 같은 연구가 연방 소장 1,600건을 무작위로 뽑아 AI 문장 탐지기로 분석했더니, 생성형 AI가 퍼지기 전에는 AI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구가 사실상 0%에 가까웠지만 2026년에는 약 18%까지 늘었다. 문제도 함께 늘었다. AI가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지어낸 서면이 잦아지자, 한 연방판사는 "없는 판례를 만들어 법원의 시간을 낭비했다"며 제재금을 물리기도 했다. 정작 판사들 사이에서도 AI는 낯설지 않다. 2026년 초 미국 연방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다수가 업무에 AI를 써봤다고 답했고, 가장 흔한 용도는 판례·법률 리서치였다. 변호사 업무는 AI가 빠르게 대체하는데 판사 업무에는 AI 도입이 더디다 보니, 본인소송 서류가 폭증하며 법원이 오히려 과부하에 걸리고 있다.
중국은 사법 AI를 가장 공세적으로 실험·도입하는 나라 중 하나다. 선전시 중급인민법원은 사건 접수부터 기록 검토, 재판 진행, 판결문 작성까지 재판의 전 과정에 AI 보조 기능을 적용했다. 다만 중국 최고인민법원조차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2022년 발표한 지침에서 AI는 판사를 대신할 수 없고 그 결과는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못 박았고, 올해 전국인민대표대회 업무보고에서 최고인민법원장은 "사법 책임의 주체는 오직 판사일 뿐"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독일은 실용 노선이다. 슈투트가르트 고등법원은 밀려드는 디젤 배기가스 대량소송을 정리하는 데 OLGA를 활용했고, 프랑크푸르트 법원은 항공기 지연·결항에 따른 승객 보상 사건에 FRAUKE를 활용해 판결문 초안까지 만들었다. 판결문에서 개인정보를 자동으로 지우는 데에는 JANO 같은 도구가 쓰인다. 어느 것이나 판사를 '거드는' 역할이다.
일본은 신중하고 더디다. 법원 문서의 디지털화부터 늦은 데다, AI를 사법 판단에 직접 끌어들이기보다 연구와 제도 정비에 무게를 둔다. 2025년 제정한 'AI 관련 기술의 연구개발·활용 촉진법'도 강한 금지·제재보다 진흥과 기본원칙을 앞세운 구조에 가깝다.
오해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2019년 외신은 에스토니아가 7,000유로 이하 소액 사건을 처리할 '로봇 판사'를 만들고 있으며 그해 안에 시범 운영을 시작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 시범 사업은 실제로 진행되지 않았고, 2022년 에스토니아 법무부는 그런 프로젝트도, 그럴 의도도 없었으며 해당 보도가 오해를 불렀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AI 판사를 향한 기대가 현실을 앞질러 달려간 대표적인 장면이다. 프랑스는 정반대로 갔다. 2019년 사법개혁법 제33조로, 판사 개인의 식별정보를 이용해 그 판사의 직무상 관행을 평가·분석·비교·예측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 최대 5년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판결문은 판사 이름과 함께 공개되지만, 그 데이터로 특정 판사의 성향을 예측하는 리걸테크식 프로파일링은 막은 것이다.
한국 법원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
한국 사법부도 멈춰 있지 않다. 2026년 초 대법원은 AI 정책을 전담할 '사법인공지능심의관'을 신설했고, 법원행정처는 판례·법령·문헌을 종합 검색해주는 '재판지원 AI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사업은 4단계로 설계돼, 앞으로는 소장과 준비서면의 쟁점을 정리하고 판결문 초안의 논리 오류까지 점검하는 단계로 나아갈 계획이다. 2026년 5월에는 서울행정법원의 한 재판부가 육아휴직급여 사건 판결문에 AI로 만든 그림과 도표를 넣어, 국민이 더 쉽게 이해하도록 시도하기도 했다.
다만 한국 사법부는 분명한 원칙도 함께 세웠다. 지난해 법관들이 직접 마련한 내부 'AI 활용 가이드라인'은 AI가 어디까지나 판단을 '보조'하는 수단이며, 그 결과의 정확성을 확인하고 책임지는 것은 법관이라고 명시했다. AI의 환각과 데이터 편향을 늘 경계하고, 소송당사자가 AI로 만든 자료를 낼 때는 그 사실을 밝히도록 하며, 의심되는 경우 법원이 석명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유럽연합도 같은 방향이다. 2024년 발효된 EU 인공지능법은 사법기관이 사실과 법률을 조사·해석하는 데 쓰는 AI를 '고위험'으로 분류하고 까다로운 통제를 요구한다.
이 모든 흐름 위에 헌법이 있다.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이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제103조는 법관의 독립을 정한다. 현행 헌법상 AI가 단독으로 최종 재판을 내리는 구조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적어도 법관의 실질적 판단과 책임을 배제하는 방식은, 헌법을 고치지 않는 한 허용되기 어렵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AI가 판사를 대체하는가'가 아니라, 'AI가 어디까지 판사를 돕고 그 위험을 어떻게 통제하는가'의 문제다.
그래서 AI 판사는 정말 도입되는가
전문가들의 답은 대체로 한 방향이다. 가까운 미래에 AI가 단독으로 주요 판결을 내리기는 어렵고, AI가 분석과 초안, 검토를 맡되 최종 책임은 법관이 지는 방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일부 전문가는 AI가 관여한 부분을 판결문에 따로 표기해 당사자가 그 대목을 겨냥해 반박할 수 있게 하는 '공동판결' 모델을 그리기도 한다.
상상은 이미 구체적이다. 한 언론이 법조인 10명을 인터뷰해 그려본 2036년의 법정에서는, 'AI 판결 공개법'에 따라 법원 판결과 AI의 판결 초안이 나란히 공개된다. AI가 징역 10년을 제시했는데 판사가 5년을 선고하면, 판사를 향한 비판이 쏟아진다. 거꾸로 AI가 5년을 제시했는데 판사가 20년을 선고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칼끝은 다시 인간 판사를 향한다. 그 미래에서도 자율주행차 사고처럼 정답이 없는 사건 앞에서, 마지막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차라리 배심제가 답일까
여기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나온다. AI 판사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은, 결국 판사 한 사람의 판단을 못 믿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시민이 직접 판단에 참여하는 배심제, 즉 국민참여재판이 더 근본적인 답이 아닐까.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한 전직 판사는 자신이 실제로 내렸던 판결들을 돌아보며 AI 판사보다 배심제가 낫다고 말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예외 없이 실형이 선고되던 시절 구속영장을 기각한 일, 검찰과 헌법재판소가 모두 종결한 뺑소니 사건에서 운전자가 바뀌었다고 본 판결처럼, 선례와 과거 데이터만 따랐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판단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뒷날 양심적 병역거부의 대체복무를 인정한 것을 보면, 그 판단이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데이터로 학습한 AI라면 이런 변화의 첫 단추를 끼우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배심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시민의 판단도 여론과 감정,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건이 복잡할수록 법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그 부담이 배심원에게 그대로 넘어간다. 배심제는 판단의 정당성을 시민에게서 끌어오는 좋은 장치이지만, 그 자체로 모든 불신을 없애지는 못한다. 중요한 것은 AI든 배심제든, 판단의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고 책임의 주체를 비워두지 않는 일이다.
이 변화 속에서, 변호사는 무엇을 하는가
그렇다면 AI가 법정에 들어오는 시대에 변호사의 역할은 사라질까. 오히려 반대다. 정보를 분석하고 서면을 만드는 일을 AI가 맡을수록, 변호사에게 남는 일은 더 본질적인 쪽으로 옮겨간다. 어떤 증거가 결정적인지 판단하고, 사건의 맥락과 사람의 사정을 읽어내며, 그것을 판단하는 이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일이다. 특히 시민이 판단하는 배심제에서는, 법리를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변호사의 역할이 더 무거워진다. AI가 끝내 만들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서사'와 '공감'이다.
상담실의 관점에서 보면, 분쟁에 놓인 사람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시간 축으로 나뉜다.
먼저 오늘 안에 할 일은 증거를 손에 쥐는 것이다. 문자와 메시지, 녹취, 계약서, 계좌이체 내역, 진단서처럼 사건의 뼈대가 되는 자료를 흩어지기 전에 모은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무엇이 결정적 증거인지 가려내고 그 순서를 잡는 일은 사람의 판단이 필요하다.
다음 며칠 안에 할 일은 절차를 고르는 것이다. 고소가 먼저인지, 내용증명과 가압류가 먼저인지, 형사 합의와 민사소송 중 무엇을 앞세울지는 사건마다 다르다. 지금 바로 움직일 단계인지, 증거를 더 모을 단계인지 판단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같은 사실관계라도 절차의 순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절대 하지 말 일도 분명하다. 상대방에게 먼저 연락해 증거를 없앨 빌미를 주는 일, 감정에 휩쓸려 성급하게 합의해버리는 일, 불리한 진술을 남기는 일이다. AI 챗봇에 사건의 민감한 내용을 그대로 입력하는 것도 위험하다. 그 입력이 어디에 남고 어떻게 쓰일지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개입하면 달라지는 것은 결국 이 흐름이다. 같은 증거라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절차로, 어느 타이밍에 움직이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대응과 사건의 결과가 달라진다. AI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그 도구를 들고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거울 앞에서, 결정하는 손은 사람의 것이다
판사를 못 믿겠다는 분노는 진짜다. 그 분노가 사법을 더 투명하고 책임 있게 만드는 힘이 된다면, AI든 배심제든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AI는 정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그저 과거를 비출 뿐이다. 그 거울 앞에서 무엇이 옳은지 끝내 결정하는 손은, 여전히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계에 대한 환상도, 기계에 대한 공포도 아니다. 판단을 누구에게 맡기든, 그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고 책임을 분명히 하는 설계다.
한병철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 변호사(대한변협 인증 형사전문변호사 · 부동산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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