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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분석/최신동향

[부산 변호사 한변의 리얼상담실32] 국민참여재판으로 갈지, 그 전에 따져본다

사례분석/최신동향2026년 6월 5일

[부산 변호사 한변의 리얼상담실32] 국민참여재판으로 갈지, 그 전에 따져본다

배심재판의 신청과 진행, 무죄율과 변호사 역할까지 - 알고 정하면 대응이 달라진다

법정에 서기 전, 누구나 한 번은 묻는다

한 사람이 공소장을 받아든 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이렇게 물었다. "배심원 앞에 서는 게 나을까요, 판사 앞에 서는 게 나을까요." 형사사건으로 재판을 앞둔 사람이 떠올리는 질문이다. TV, 영화, 드라마 법정에서 본 장면 때문에 막연히 배심재판이 유리할 것 같다는 기대도 있고, 한편으로는 법을 모르는 일반 시민이 내 사건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배심제의 정식 이름은 국민참여재판이다. 2008년 1월부터 시행된 제도로, 일반 국민이 배심원이 되어 형사재판을 지켜본 뒤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한 평결을 내리고 적정한 형을 토의하면 재판부가 이를 참고해 판결을 선고한다. 그런데 이 제도는 신청한다고 해서 늘 열리는 것이 아니고, 열린다고 해서 늘 유리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신청 여부를 정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배심재판은 아무 사건에나 열리지 않는다

국민참여재판은 모든 형사사건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국민참여재판법은 지방법원 합의부가 맡는 사건, 즉 법정형이 비교적 무거운 사건을 대상으로 정한다. 살인, 강도, 성범죄, 일정 규모 이상의 사기·횡령처럼 판사 세 명이 함께 재판하는 합의부 사건이 여기에 해당한다. 처음에는 강력·부패 사건으로 좁게 운영되다가 2012년 개정으로 대상이 합의부 사건 전반으로 넓어졌다.

절차의 출발점은 피고인의 의사다. 검사가 기소하면 법원은 공소장 부본과 함께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 묻는 서면을 보내고, 피고인은 공소장 부본을 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원한다는 서면을 내야 한다. 이 기간에 서면을 내지 않으면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사람들이 흔히 "재판이 시작되면 그때 정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 7일이 첫 번째 분기점이다. 출발 시점을 놓치면 선택지 하나가 그대로 닫힌다.

신청했다고 다 열리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부터가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지점이다.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해도 법원이 배제결정을 내리면 일반재판으로 돌아간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은 배심원의 생명·신체·재산에 침해 우려가 있는 경우, 공범 중 일부가 원하지 않는 경우, 성폭력범죄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 그리고 "그 밖에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배제할 수 있다고 정한다. 마지막 항목이 법원에 넓은 재량을 준다.

실제로 신청을 한다고 해서 다 열리는 것은 아니다. 신청률 자체가 전체 대상사건의 몇 퍼센트에 머무는 데다, 그중에서도 피고인이 스스로 철회하거나 재판부가 배제하면서 실제로 열리는 건수는 더 줄어든다. 법원이 배제하는 이유를 보면 "진행이 적절하지 않다"는 사유가 가장 많고, 성폭력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가 그다음이다. 특히 성범죄 사건의 배제 비율이 높다. 2026년 4월에도 사회적 관심을 받은 한 강제추행 사건에서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느 재판부를 만나느냐에 따라 배심재판이 열릴 확률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판사들이 배심재판을 선뜻 받아주지 않는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겹쳐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을 무작위로 뽑아 부르고, 법정에 합의실과 넓은 공간을 마련하고, 법을 모르는 배심원에게 쟁점을 하나하나 설명해야 한다. 한 법원 관계자의 말처럼 국선변호인이 국민참여재판 한 건을 맡으면 일반 사건 다섯에서 열 건을 맡는 것과 비슷한 업무 강도다. 게다가 배심원이 공들여 내린 평결도 2심에서는 판사 세 명이 다시 판단하기 때문에, 어렵게 진행한 재판이 뒤집힐 수 있다는 부담도 작용한다. 이런 사정이 쌓여 실시 건수는 한때 300건을 넘기도 했지만 2020년 이후로는 해마다 100건을 밑돌아, 2024년에는 91건에 그쳤다.

재판은 하루 만에, 그러나 한 사건만

배심재판이 실제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아두면 막연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먼저 배심원을 정하는 절차가 있다. 법원은 주민등록 자료에서 후보자를 무작위로 뽑아 선정기일 3~4주 전에 통지서를 보낸다. 선정기일에는 검사와 변호인이 후보자에게 질문하고, 편향이 우려되는 사람을 가려낸다. 이때 검사와 변호인은 이유를 대지 않고도 일정 수의 후보자를 거를 수 있는데, 배심원이 9명인 사건은 각자 5명, 7명인 사건은 4명, 5명인 사건은 3명까지 가능하다. 이렇게 추려서 배심원을 확정한다.

배심원의 수는 사건의 무게로 정해진다.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가능한 사건은 9명, 그 외 사건은 7명, 피고인이 공소사실의 주요 내용을 인정해 다툼이 적은 사건은 5명이다. 배심원 자격은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고, 헌법재판소는 2021년 이 연령 기준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민법상 성년이 만 19세인 점을 들어 배심원 연령도 만 19세로 낮추자는 개정안이 국회에서 거듭 논의되고 있어, 앞으로 기준이 바뀔 여지는 남아 있다.

재판이 시작되면 검사와 변호인이 같은 날 집중적으로 공방을 벌인다. 우리나라 배심재판은 길어도 며칠, 보통은 하루 만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변론이 끝나면 재판장이 배심원에게 공소사실의 요지와 적용 법조, 유의할 점을 설명하고, 배심원들끼리 따로 모여 유·무죄를 평의한다. 평결은 만장일치가 원칙이다. 의견이 갈리면 판사의 의견을 들은 뒤 다수결로 정한다. 유죄로 평결되면 배심원은 판사와 함께 형에 관해 토의하고 의견을 낸다.

여기서 우리 제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나온다. 배심원의 평결은 권고적 효력만 가진다. 즉 판사를 법적으로 구속하지 않는다. 다만 재판부가 평결과 다른 판결을 선고할 때에는 피고인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판결서에도 적어야 한다. 실제로는 판사가 평결을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결과 선고가 어긋난 비율은 2024년 기준 2.2%에 그쳤다.

왜 배심재판에서 무죄가 더 많이 나오는가

배심재판을 떠올릴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죄율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 수치도 그렇다. 전체 1심 형사재판의 무죄율은 1% 안팎에 그치지만, 배심재판의 무죄율은 그보다 여러 배 높다. 격차가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성범죄다. 법원행정처가 2025년 내놓은 국민참여재판 성과분석을 보면, 2024년 배심재판으로 다툰 성범죄 사건의 무죄율은 52.3%에 이르렀다. 일반 형사재판 1심에서 주요 성범죄의 무죄율이 통상 2~3% 수준인 점과 견주면 큰 차이다. 같은 해 배심재판에서 성범죄의 실형 선고 비율도 33.3%로, 살인(71.4%)·강도(50%)·상해(50%)보다 눈에 띄게 낮았다.

무죄가 많이 나오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겹친다. 첫째, 애초에 무죄를 다툴 만한 사건이 배심재판으로 몰린다. 유죄가 명백한 사건은 굳이 배심재판을 택하지 않으니, 다투는 사건의 비율 자체가 높다. 둘째, 시민 배심원은 "합리적 의심"의 문턱을 엄격하게 본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유죄로 단정하지 않는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셋째, 고의나 인식 같은 주관적 요건을 따질 때 시민의 눈높이가 작동한다. 예를 들어 보이스피싱 현금 전달책이 "범죄인 줄 몰랐다"고 항변하는 사건에서, 배심원은 그 사정에 더 쉽게 공감하기도 한다. 넷째, 서면보다 말로 펼치는 변론과 피고인의 직접 진술이 배심원에게 더 생생하게 전달된다.

다만 동전의 양면이 있다. 무죄율이 높다는 사실은 일부 사건에서 제도가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로도 이어진다. 실제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배심재판으로 접수된 사건의 약 4분의 1이 성범죄였고, 물증 없이 피해자 진술에 크게 의존하는 성범죄에서 배심재판이 방어 전략처럼 쓰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배심원의 성에 관한 고정관념이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래서 "배심재판은 언제나 유리하다"고 단정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사건의 성질에 따라 오히려 불리해질 수도 있고, 법원이 신청을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이 흐름과 반대 방향의 신호도 있다. 대법원은 2024년,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면 항소심이 이를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되고 더 존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명백히 반대되는 충분하고 납득할 만한 사정이 새로 드러나지 않는 한 만장일치 평결의 무게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이 법리는 지금도 항소심이 1심의 무죄 평결을 다룰 때의 기준으로 작동하며, 배심원의 판단에 한층 힘을 실어 주고 있다.

핵심은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다툼의 결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배심재판으로 가는 것이 전략적으로 맞을까. 핵심은 형이 무거운 사건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다투는 사건이냐다. 사실관계 자체를 다투는 사건, 즉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거나 "고의가 없었다"처럼 유·무죄가 진실로 갈리는 사건은 시민의 상식과 눈높이가 유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다. 검사의 증거가 정황에 기대고 있거나, 어려운 법리보다 평범한 상식으로 설명되는 사건일수록 그렇다.

반대로 사실관계는 다툼이 없고 형량만 줄이려는 사건이라면 신중해야 한다. 배심원이 사건을 괘씸하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형이 무거워질 수 있고, 검사의 항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국민참여재판의 항소율은 일반재판보다 높고, 그중에서도 검사 항소율의 차이가 크다. 또한 첫 공판기일이 잡히기까지만 반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아 시간도 더 든다. 빨리 마무리하는 편이 나은 사건이라면 이 점도 함께 따져야 한다.

재판 전에 무엇을 준비하는가

배심재판은 준비의 재판이다. 시간 축으로 나눠서 보면 할 일이 분명해진다.

먼저 오늘 안에 할 일이 있다. 공소장과 수사기록을 꺼내, 내가 무엇을 다툴 수 있는지부터 정리한다. 사실관계를 다투는 사건인지, 형량만 다투는 사건인지를 가르는 일이 시작이다. 신청 기한이 7일로 짧으니 결정을 미루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며칠 안에 할 일은 증거를 모으는 것이다. 문자와 메신저 대화, 통화 녹음, 계좌이체 내역, 계약서, 진단서, CCTV처럼 내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를 시간 순서대로 정돈한다. 배심원은 복잡한 법리보다 눈으로 보이는 증거에 가장 많이 기댄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건을 한 장의 그림처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절대 하지 말 일이 있다. 상대방이나 피해자에게 먼저 연락해 합의를 시도하다가 증거를 없애게 만들거나 불리한 진술을 남기는 일, 수사기관에서 즉흥적으로 진술해 앞뒤가 맞지 않는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한번 어긋난 진술은 배심원 앞에서 그대로 약점이 된다.

변호사는 이 재판에서 무엇을 하는가

배심재판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일반재판과 결이 다르다. 준비된 변호사는 네 가지를 해 준다.

첫째, 증거를 정리한다. 흩어진 자료 가운데 무엇이 핵심인지 가려내고, 배심원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순서로 다시 짠다.

둘째, 절차를 고른다. 그 사건을 배심재판으로 가져갈지, 일반재판으로 다툴지, 자백 사건이라면 양형에 집중할지를 사건의 성질에 맞춰 판단한다.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것이 늘 정답은 아니므로, 이 선택 자체가 변호의 출발점이다.

셋째, 타이밍을 본다. 지금 바로 신청하고 움직일 단계인지, 증거를 더 모은 뒤 판단할 단계인지를 가린다. 7일의 신청 기한, 배제결정에 대한 즉시항고, 공판준비기일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일정을 관리한다.

넷째, 실수를 막는다. 의뢰인이 감정적으로 합의해 버리거나, 상대방에게 연락해 증거를 없애게 만들거나, 불리한 진술을 남기는 것을 미리 차단한다.

무엇보다 배심재판은 말의 재판이다. 변호사가 개입하면 같은 사실관계도 배심원에게 다른 방식으로 전달된다. 검사의 서면 논리에 맞서 사건을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모두진술부터 최후변론까지 일관된 그림을 그려 줄 사람이 곁에 있느냐에 따라 재판의 흐름은 달라진다. 결과를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준비된 변론은 불리해질 위험을 줄인다.

미국·일본·독일·중국은 이렇게 한다

배심제는 나라마다 모습이 다르다. 우리 제도를 객관적으로 보려면 옆 나라들을 함께 봐야 한다. 아래 수치는 각국에서 가장 최근 집계된 사법통계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미국은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둔다. 중죄와 6개월을 넘는 형이 가능한 사건에 그 권리가 보장된다. 형사 소배심은 보통 12명으로 구성되고 만장일치로 평결하며, 특히 무죄 평결은 사실상 번복되지 않는다. 별도로 기소 여부를 정하는 대배심은 16명에서 23명으로 꾸려진다. 2023년 미국 연방지방법원에서 피고인이 무죄를 다퉈 정식 공판으로 간 사건의 약 88%가 배심재판으로 열렸다. 진짜 다투는 사건일수록 배심 앞에 선다는 뜻이다.

일본은 2009년부터 재판원재판을 시행한다. 우리처럼 시민만 따로 평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업 법관 세 명과 시민 재판원 여섯 명이 한 재판부를 이뤄 유·무죄와 형을 함께 정하는 참심형이다. 살인이나 강도치사상 같은 중대 사건에 적용되고, 평균 심리 기간은 17일 안팎으로 우리보다 훨씬 길다. 다만 전체 형사재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안팎으로 크지 않다.

독일은 참심제의 전형을 보여준다. 직업 법관과 시민 참심원이 같은 재판부에 앉아 유·무죄부터 양형까지 함께 결정한다. 시민이 따로 평결하지 않고 법관과 한 몸으로 판단한다는 점이 미국식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2022년 기준 독일의 1심 구법원 사건 가운데 약 12%가 참심재판으로 치러질 만큼, 시민 참여가 일상에 가깝게 자리 잡았다.

중국도 인민배심원제도를 둔다. 2018년 인민배심원법을 만들어, 만 28세 이상 시민을 대부분 무작위로 뽑아 법관과 함께 합의부를 구성한다. 세 명 합의부에서는 배심원이 사실과 법률 모두에 표결하지만, 사회적 영향이 큰 사건을 다루는 일곱 명 합의부에서는 사실관계 판단에만 표결하고 법률 적용에는 의견만 낼 수 있다. 사실은 시민이, 법은 법관이 본다는 원칙을 제도에 담은 셈이다.

이렇게 보면 큰 흐름이 보인다. 영미식은 시민이 사실관계를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그 결정에 무게를 싣는 쪽이고, 독일·일본·중국식은 법관과 시민이 한 재판부에서 함께 판단하는 쪽이다. 우리 국민참여재판은 시민이 평결하되 법관이 최종 판단권을 갖는 절충형이다. 배심원의 평결이 법관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 제도의 특징이자, 활성화가 더딘 원인으로도 자주 지적된다. 그래서 합의부 사건은 원칙적으로 배심재판으로 열고, 공직선거법 위반·고위공직자 부패·살인처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건은 의무적으로 다루며, 배심원 평결의 효력을 더 강하게 하자는 개정안이 국회에 거듭 올라와 있다. 국민참여재판을 확대하는 방향은 현 정부의 사법개혁 과제로도 꼽힌다.

AI가 판결문을 돕는 시대, 시민의 자리는 어디인가

사법의 풍경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법원은 2025년 사법부 AI위원회를 꾸리고, 2026년에는 법관을 돕는 재판지원 AI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다. 판례와 법령, 주석서를 종합해 쟁점을 정리해 주는 도구다. 동시에 법원은 AI가 만들어 낸 가짜 판례를 거르기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존재하지 않는 사건번호를 확인해 주는 기능을 두고, 검증 없이 허위 판례를 낸 경우 소송비용 부담이나 징계로 이어질 수 있게 했다. 최종 판단과 책임은 어디까지나 법관에게 있다는 원칙도 분명히 했다.

흥미로운 것은 AI가 법률 영역을 더 많이 맡을수록, 시민의 자리는 오히려 또렷해진다는 점이다. 법조문을 찾고 비슷한 판례를 정리하는 일은 기계가 빠르게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정말 그 일을 했는가", "이 정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사실관계와 상식의 판단은 기계가 대신하기 어렵다. 바로 그 영역이 배심원이 맡아 온 자리다. 사실은 사람이 보고, 법은 도구가 돕고, 책임은 법관이 진다. 사법의 미래가 이 방향으로 간다면, 시민이 사실을 판단하는 배심의 의미는 사라지기는커녕 더 커질 수 있다.

결국 먼저 정해야 할 것

배심재판을 앞두고 가장 먼저 정해야 할 것은 "이길까"가 아니라 "이 사건을 누구 앞에서 다툴 것인가"다. 그 선택은 사건의 성질을 읽는 데서 시작된다. 지금 필요한 건 막연한 기대도 막연한 두려움도 아니라, 내 사건이 어떤 다툼인지부터 차분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한병철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 변호사(대한변협 인증 형사전문변호사 · 부동산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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