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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려줄 사람보다 받을 사람이 먼저 떠나면
물려줄 사람보다 받을 사람이 먼저 떠나면
아버지가 조카에게 시골 논을 주겠다고 유언장에 적어 두셨습니다. 그런데 그 조카가 지난겨울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유언장을 고치지 못한 채 올봄에 돌아가셨습니다. 조카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가 할아버지 대신 논을 받을 수 있는지가 남은 가족들의 물음입니다. 상속에서는 자식이 먼저 죽으면 손자가 그 자리를 잇는다고들 알고 계십니다. 유증도 같은 길을 가는지, 아니면 다른 규칙이 따로 서 있는지가 이 글에서 볼 대목입니다.
조문은 어떤 장면을 겨냥해 놓았나
민법은 이 상황에 한 줄을 배정해 두었습니다. 제1089조 제1항이 그 줄입니다. 유증은 유언자의 사망 전에 수증자가 사망한 때에는 그 효력이 생기지 아니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순서가 전부여서, 먼저 떠난 쪽이 받을 사람이면 그 유증은 태어나지 못합니다.
제2항은 조건을 붙인 유증을 따로 다룹니다. 정지조건이 달린 유증에서 수증자가 그 조건이 이루어지기 전에 사망하면 역시 효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수증자
유언으로 재산을 받게 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상속인일 수도 있고 아무 혈연이 없는 이웃이나 단체일 수도 있습니다. 상속인은 법이 정한 순위로 자리를 얻지만, 수증자는 오직 유언자의 지목으로 자리를 얻습니다. 이 차이가 뒤에 나오는 결론을 전부 만들어 냅니다.
효력이 생기지 않은 재산은 어디로 가나
바로 다음 조문이 답을 줍니다.
제1090조는 유증이 효력을 잃거나 수증자가 포기한 때에 그 목적인 재산이 상속인에게 귀속한다고 정합니다.
논은 상속재산으로 되돌아오고, 상속인들이 법정상속분에 따라 나누어 가지게 됩니다.
다만 같은 조문에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유언자가 유언으로 다른 뜻을 밝혀 두었다면 그 뜻이 앞섭니다. 조카가 먼저 죽으면 그 아들에게 준다는 문장 하나로 결론이 달라졌을 자리입니다.
한 문장의 값이 이렇게 큽니다.
상속에는 대습이 있는데 유증에는 왜 없나
가족들이 가장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대목이 여기입니다. 제1001조는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이나 형제자매가 상속개시 전에 사망한 경우 그 직계비속이 사망한 사람의 순위에 갈음하여 상속인이 된다고 정해 두었습니다. 제1003조 제2항은 먼저 사망한 사람의 배우자에게도 같은 자리를 줍니다.
그런데 이 조문은 상속인 순위를 정하는 제1000조를 받아 쓴 규정입니다. 유증은 그 순위표 바깥에서 유언자의 지목만으로 생기는 권리이므로 대습을 끌어다 쓸 통로가 없습니다.
이유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유언자가 고른 사람은 그 사람이지 그 사람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구분 | 법정상속 | 유증 |
|---|---|---|
| 자리를 얻는 근거 | 제1000조의 순위표 | 유언자의 지목 |
| 먼저 사망한 경우 | 제1001조에 따라 그 직계비속이 대신 들어옴 | 제1089조에 따라 효력 자체가 생기지 않음 |
| 배우자의 지위 | 제1003조 제2항이 같은 순위를 인정 | 별도 규정 없음 |
| 남은 재산의 행방 | 순위표에 따라 다음 사람에게 | 제1090조에 따라 상속인에게 귀속 |
포괄유증이라면 결론이 달라지나
재산의 몇 분의 몇을 준다는 식으로 비율을 적은 것을 포괄유증이라 부릅니다. 제1078조는 포괄적 유증을 받은 자가 상속인과 동일한 권리의무가 있다고 규정합니다.
이 문장을 보고 포괄수증자에게도 대습이 붙는다고 읽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제1078조는 유증이 효력을 얻은 다음의 권리와 의무를 상속인처럼 다루겠다는 뜻입니다. 효력이 생길지 말지를 정하는 입구의 문제는 제1089조가 맡습니다.
입구에서 막히면 안쪽 규정은 쓸 일이 없습니다.
순서가 반대였다면 어떻게 되나
유언자가 먼저 사망하고 수증자가 그 뒤에 사망한 경우는 완전히 다른 사건이 됩니다. 제1073조 제1항이 유언은 유언자가 사망한 때로부터 효력이 생긴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효력이 생겼으므로 논을 받을 권리는 조카에게 넘어갑니다. 그 권리는 조카가 남긴 재산의 일부가 됩니다.
승인과 포기를 정하지 못한 채 사망한 경우도 법이 정해 두었습니다. 제1076조는 수증자가 승인이나 포기를 하지 아니하고 사망한 때에 그 상속인이 상속분의 한도에서 승인 또는 포기할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제1074조에 따라 승인이나 포기의 효력은 유언자가 사망한 때로 소급합니다.
주의
사망 순서를 어림으로 말하고 넘어가면 나중에 뒤집힙니다. 같은 사고로 두 사람이 함께 사망한 경우처럼 선후를 가리기 어려운 사안에서는 사망진단서의 사망 일시, 사고 기록, 의무기록이 그대로 증거가 됩니다. 가족관계등록부의 사망 신고 날짜는 신고한 날일 뿐 사망한 날이 아니므로 그것만 보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유언장을 쓸 때 무엇을 적어 두면 되나
제1090조 단서가 열어 둔 길을 쓰면 됩니다. 받을 사람이 먼저 떠났을 때를 가정한 문장을 미리 넣는 것입니다.
- 지목한 수증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사람을 특정합니다
- 그 사람이 나보다 먼저 사망한 경우에 누구에게 갈지를 한 문장으로 덧붙입니다
- 예비로 지목한 사람도 먼저 사망한 경우를 대비해 최종 귀속처를 정합니다
- 조건을 붙인 유증이라면 조건이 이루어지기 전에 사망한 경우의 처리도 함께 적습니다
자필증서로 쓰신다면 제1066조가 요구하는 전문, 연월일, 주소, 성명의 자서와 날인을 빠뜨리지 마십시오.
다시 쓰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제1108조는 유언자가 언제든지 유언 또는 생전행위로써 유언의 전부나 일부를 철회할 수 있게 하고, 그 철회권을 포기하지 못하게 합니다.
확인할 것
· 유언자와 수증자의 사망 일시를 각각 증명할 서류
· 유언장에 예비 수증자를 정한 문장이 있는지
· 유증이 특정유증인지 비율을 적은 포괄유증인지
· 조건이 붙어 있다면 그 조건이 이루어진 시점
· 유언장이 제1065조가 정한 다섯 방식 중 어느 것으로 작성되었는지
정리
제1089조는 받을 사람이 먼저 떠난 유증을 처음부터 생기지 않은 것으로 다룹니다. 정지조건이 붙었다면 조건이 이루어지기 전의 사망도 같습니다.
그 재산은 제1090조에 따라 상속인에게 돌아가며, 대습상속을 정한 제1001조는 유증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순서가 반대로 유언자가 먼저 사망했다면 제1073조에 따라 유증은 이미 효력을 얻었고, 수증자의 권리는 그 상속인에게 이어집니다. 갈림길은 딱 사망의 선후 하나입니다.
결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유언자 본인뿐입니다. 예비 수증자를 정한 문장 하나면 됩니다. 이미 다툼이 시작되었다면 유언장과 가족관계 서류를 정리해 상속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와 방향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1000조, 제1001조, 제1003조, 제1065조, 제1066조, 제1073조, 제1074조, 제1076조, 제1078조, 제1089조, 제1090조, 제1108조
본 글이 일반적 안내였다면, 본인 사안은 사실관계가 조금만 달라져도 결론이 크게 달라집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 중이시라면 정식 상담을 권합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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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유언장에 이름이 적힌 삼촌이 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삼촌의 아들이 대신 받을 수 있나요?
유언장에 예비 지정 문장이 없다면 어렵습니다. 제1089조가 그 유증의 효력을 부정하고 제1090조가 목적물을 상속인에게 귀속시키므로, 대습상속을 정한 제1001조는 여기에 끌어다 쓰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두 달 뒤에 수증자가 사망했습니다. 이 경우도 무효인가요?
무효가 아닙니다. 제1073조에 따라 유언은 유언자 사망 시에 효력이 생기므로 수증자는 이미 권리를 얻은 상태입니다. 그 권리는 수증자의 상속재산에 포함되고, 승인이나 포기를 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면 제1076조가 그 상속인에게 선택권을 넘겨 줍니다.
재산의 3분의 1을 준다고 적힌 포괄유증도 같은 결론인가요?
같습니다. 제1078조가 포괄수증자를 상속인과 동일한 권리의무 관계에 놓지만, 이는 유증이 효력을 얻은 뒤의 지위에 관한 규정입니다.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한 경우에는 제1089조가 앞서 작동해 효력 자체가 생기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유언장을 고쳐 두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1108조가 언제든지 유언의 전부나 일부를 철회할 수 있게 하므로 새로 작성하시면 됩니다. 이때 수증자가 먼저 사망한 경우 누구에게 돌아갈지를 적어 두면 제1090조 단서가 그 뜻을 따르게 합니다. 자필증서라면 제1066조의 요건을 다시 확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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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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